아마 초등학교 6학년 때다. 사촌 누나가 야심 차게 통기타를 취미로 시작했다.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 누나의 의지가 시들해졌을 즈음 내가 통기타를 받아왔다. 하지만, 초등학생 손으로 통기타 쇠줄을 운지하여 코드를 연주하는 건 사실 너무 힘들었다.
부모님을 졸라 집 근처 통기타 레슨 학원에 등록했다. 그 때만해도 피아노 외의 다른 악기를 배우러 학원을 다니는 경우는 드물었다. 더군다나 나는 어린 학생이었고, 학원 원장님이 다른 수강생들에게 나를 소개할때 항상 최연소 학생이라 소개했던 기억이 난다. 물려받은 통기타를 몇 번 들고 갔는데 매우 저품질인걸 알게 되었고, 손가락도 너무 아파서 클래식 기타를 새로 샀다. 가격은 8만 원.
통기타 줄은 쇠줄이다. 철사와 다르지 않아서 매우 손이 아프다. 반면에 클래식 기타는 나일론 줄이라 상대적으로 훨씬 운지가 쉽다. 챙챙거리는 통기타에 비해 소리도 훨씬 부드럽고 무겁다. 꽤 오래 즐겁게 배웠다. 통기타를 등에 메면 또래 친구들보다 더 어른스러운 으쓱한 기분도 들고, 괜스레 멋진 남자 같았다. 즐겨 부른 노래는 변진섭의 <새들처럼>.
그리고 잠시 쉬었다. 통기타 시절이 끝나가고 있었다. 90년대 초반 신해철의 <그대에게>, 신성우의 <내일을 향해>, 015B의 <아주 오래된 연인들> 등 락 밴드가 선풍적인 히트를 쳤다. 그리고 해외 헤비메탈 밴드가 국내에서 많은 인기를 누렸고 나 역시 스키드 로우, 건즈 앤 로지스, 핼러윈, 메탈리카 음악을 매일 들었다. 잔뜩 겉멋 들은 중학생은 아버지를 졸라 또 낙원상가를 간다. 파란색 에나멜로 마감된 보급형 일렉기타와 기본형 앰프를 샀던 걸로 기억한다. 약 15만 원~20만 원. 내가 구입한 일렉기타는 딱 이런 느낌이었다.
오래된 기타 구입 기를 꺼내보는 이유는 요즘 다시 기타 솔로 연주에 대한 꿈이 생겨서다. 코로나 상황이 장기화되어 외부 활동이 어렵다 보니 집에서 혼자 즐길 거리를 자꾸 찾는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닌 지, 홈 하비 Home hobby 라는 단어가 최근 기사에 심심찮게 보인다. 재택근무 덕분에 확보된 개인 시간을 자기 계발, 그림 그리기나 악기 연주와 같은 취미 생활 등으로 알차게 보내려는 노력일 것이다.
일렉 기타는 고등학생이 되어 시간적인 여유도 줄고 이펙터 같은 장비를 구입할 경제적 여유도 없어 오래가지 못한 취미였지만, 마음속에는 언제나 명반의 리프를 따라 하고 현란한 속주를 완주해보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아래의 멋진 연주자들처럼.
코로나 19로 바뀐 일상은 많은 것들이 불편하고 답답하다. 하지만 여태껏 당연하게 생각했던 - 그럴 필요가 없었을지 모르는 - 것들이 변하고 있다. 매일 출근하지 않아도, 반드시 동료들과 나란히 8시간을 함께 앉아 있지 않아도 업무를 모두 잘 해내고 있다. 어쩌면 코로나가 종식되더라도, 예전 근무 형태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보너스처럼 생긴 개인의 여가시간을 잘 활용하여 일상을 더욱 즐겁고 풍요롭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Queen의 브라이언 메이처럼, Guns N' Roses의 슬래시처럼 멋진 일렉기타 솔로를 연주할 수 있는 날을 꿈 꿔본다.
2020.9.28